천연물 소재산업은 농산물을 비롯한 육상·해양 생물자원에서 약리 활성 물질을 추출해 의약품과 화장품, 기능성 식품의 원료로 공급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한국 농업이 마주한 경쟁의 조건
국내 농업이 경쟁해야 하는 나라들의 농업은 대부분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갖추고 있다. 광활한 토지를 활용한 조방적 농업이거나, 저렴한 인건비를 기반으로 한 국제 경쟁력이다. 두 조건 모두 한국 농업이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좁은 경지면적과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라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규모나 원가 경쟁으로 승부하는 전략은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농업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반대에 가깝다. 규모와 저원가로 경쁠하는 대신, 더 집약적이고 더 고원가적인 산업으로 전환하는 전략이다. 농업이 생명공학기술(BT: Bio Technology)과 융합하면, 바이오 식·의약품과 천연화장품 등에 필요한 다양한 천연물 소재를 공급하는 산업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먹거리를 넘어선 농업의 새로운 역할
생명산업이 필요로 하는 소재는 대부분 농산물과 같은 천연물에서 원료를 추출한다. 이는 미래 농업의 영역이 먹거리를 공급하는 기존의 기능을 넘어, 두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는 천연 의약품이나 기능성 소재, 기능성 식품을 추출하고 제조하는 바이오산업이고, 다른 하나는 친환경 소재나 공업 원료를 생산하는 바이오 소재 산업이다.
특히 원료의 품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소재 산업은, 규모화된 조방적 농업이나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농업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생산물이 아니다. 균일한 품질과 정밀한 성분 관리가 요구되는 소재 산업의 특성상, 오히려 집약적이고 정교하게 관리되는 농업 방식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다.
천연물이란 무엇인가
천연물(天然物)이란 사람의 힘을 가하지 않은 육상 생물, 해양 생물 혹은 미생물의 배양액에서 추출한 물질을 가리킨다. 천연물은 약리 활성(bioassays)이나 생리 활성이 있어 신약 탐색(drug discovery screens)이나 신약 디자인에 도움을 주는, 생물에 의해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합성에 의해 공급되더라도 그 구조가 생물에 의해 만들어진 것과 같다면 천연물이라고 부른다.
천연물은 생물이 서식하는 장소에 따라 구분된다. 육상 생물에 존재하는 육상 천연물과, 해양 생물에 존재하는 해양 천연물(marine natural products)로 나눌 수 있다. 실제로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껍질에서, 페니실린은 곰팡이에서 유래한 대표적인 육상 천연물 의약품이며, 복어독이나 우렁쉥이 함유 항암물질처럼 해양 생물에서 발견된 물질들도 신약 개발의 중요한 원천으로 연구되고 있다. 육상 생물 자원 연구가 오랜 역사를 가진 데 비해, 해양 생물은 상대적으로 짧은 연구 기간에도 독특한 구조의 생리활성 물질이 다수 발견되면서 새로운 신약 원천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린바이오, 천연물 산업을 국가 전략으로
이러한 흐름은 이제 개별 연구 영역을 넘어 국가 정책의 차원으로 옮겨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3년 발표한 ‘그린바이오 산업 육성 전략’에서 종자, 미생물, 동물용의약품, 곤충, 천연물, 식품소재를 6대 핵심 분야로 지정했다. 그린바이오 산업은 농업생명자원에 생명공학기술을 적용해 농업 및 전후방산업 전반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산업으로, 화석연료 기반 생산을 바이오 기반으로 대체함으로써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세계 그린바이오 시장은 2020년 기준 약 1조 2천억 달러 규모로, 연평균 6.7%의 빠른 성장세가 전망되는 반면 국내 시장은 같은 시기 5.4조 원으로 세계 시장의 0.3% 수준에 그쳤다. 이에 정부는 산업화 촉진, 혁신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 산업생태계 조성이라는 세 가지 전략을 중심으로 2027년까지 국내 산업 규모 10조 원, 수출 5조 원, 세계적 신생기업(유니콘 기업) 15개 육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원료 작물 전용 첨단농장과 바이오파운드리 시설을 구축해 천연물 소재의 대량 공급 체계를 갖추는 계획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화장품과 의약품이 만드는 수요
천연물 소재에 대한 수요는 화장품 산업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생산실적은 2023년 기준 약 14조 5,102억 원으로, 전년 대비 6.8% 증가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화학 성분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가 커지면서, 안전성이 높은 천연물 유래 원료를 활용한 기능성 화장품 소재에 대한 수요가 함께 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성장에는 관리해야 할 변수도 있다. 생물 다양성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목적으로 마련된 나고야의정서는 2014년 발표되어 한국에서는 2018년 8월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해외 생물유전자원을 활용하는 천연물 소재 기업에는 원료 조달 절차와 비용 측면에서 새로운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 가능한 천연물 원료 기반을 갖추는 것이 이러한 리스크에 대응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결론
토지 규모나 인건비로 경쟁하기 어려운 한국 농업의 조건은, 역설적으로 더 집약적이고 정교한 산업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천연물 소재산업은 먹거리 공급이라는 농업의 전통적 역할을 넘어, 의약품과 화장품, 기능성 식품에 필요한 고부가가치 원료를 공급하는 산업으로 농업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정부가 그린바이오 산업을 국가전략 차원에서 육성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가능성과 맞닿아 있다. 원료의 품질과 안전성이 핵심 경쟁력이 되는 천연물 소재산업에서, 한국 농업이 갖춘 정밀하고 집약적인 생산 방식은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앞으로 이 산업이 어떤 방식으로 국내 농업의 새로운 성장축이 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참고자료
- 농림축산식품부, 「그린바이오 산업 육성 전략」, 2023.2.16
- 식품의약품안전처, 화장품산업현황(국가승인통계), e-나라지표
- 위키백과, “천연물”
-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천연물과학연구소, 서울대학교 해양신약연구실 관련 자료
관련 콘텐츠
그린바이오와 미래 농업 산업에 대한 더 많은 분석은 KAFI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KAFI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