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산업은 인간의 감각과 지각을 자극하는 체험, 창의적 아이디어, 휴먼 네트워크를 생산 요소로 삼아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생산이 수요를 넘어선 시대
녹색 혁명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농업 생산성은 급속도로 향상되었고, 인류의 먹거리와 식량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그 결과 현대 경제는 농업과 제조업의 공급 능력이 수용 가능한 수요의 한계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농산물이든 공산품이든, 수요량을 절대적으로 상회하는 공급 능력을 상시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경제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잉 생산된 상품이 끝까지 소비되지 않고 남을 수밖에 없다. 잉여 생산물을 소비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수요를 만들어내려는 정책 역시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케인스주의(Keynesian) 경제학은 유효수요를 확대하는 정책을 통해 이 문제에 대응하려 했지만, 과잉 생산물 자체를 줄이는 방안을 찾지 못한 채 인위적인 수요 확장 정책을 계속한다면 오히려 정책의 부작용과 재정적 위험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상품 중심 경제를 넘어서야 하는 이유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만들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경제 활동의 기본이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품 중심의 경제 체제 자체에 변화가 필요하다.
경제 활동의 영역은 녹색 혁명과 산업 혁명, 정보화 혁명을 거치며 계속 확장되어 왔다. 지식산업과 생명산업 이후에 확장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휴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감성산업이다. 상품의 물리적 기능만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되지 않는 시장에서, 소비자의 감각과 정서를 움직이는 요소가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감성이란 무엇인가
감성(sensibility)이란 인간의 감각 기관이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아 감각과 지각을 만들어내는 인식 능력을 말한다. 인식론에서는 감성이 외부 세계를 아는 첫걸음이며, 인간은 이 감성을 통해서만 외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관념론적 감성론의 대표자인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1781)에서 감성을 대상에 의해 촉발되는 방식으로 표상을 받아들이는 능력, 즉 수용성으로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감성을 통해서이고, 그 대상이 사고되는 것은 지성을 통해서이다. 공간과 시간은 이러한 감성이 작동하는 형식적인 조건에 해당한다.
물질 경제에서 감성 경제로
경제 활동의 무게중심은 물질 경제에서 지식 경제로, 그리고 다시 감성 경제로 진화하고 있다.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량과 생활용품, 사치품을 소비하던 인간의 경제 활동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같은 정보통신 기술의 혁명적 발달, 그리고 지식 기반 사회의 도래와 함께 조금씩 변화해 왔다. 그 결과 감성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학계에서도 독립적으로 관찰되어 왔다. 미국의 경영학자 조지프 파인(B. Joseph Pine II)과 제임스 길모어(James H. Gilmore)는 1998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발표한 논문에서 경제적 가치가 농산물에서 공산품, 서비스를 거쳐 체험(experience)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서비스가 상품화(commoditization)되면서 기업들이 고객에게 기억에 남는 체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봤으며, 이러한 흐름을 체험경제(Experience Economy)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감성산업이 다루는 체험과 감성이라는 요소는, 이처럼 서로 다른 시대와 관점에서 독립적으로 그 중요성이 확인되어 온 셈이다.
결론
농업과 제조업의 생산 능력이 이미 수요를 넘어선 시대에, 상품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방식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케인스주의적 수요 확장 정책이 갖는 한계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이런 상황에서 감성산업은 상품 중심 경제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의 감각과 지각을 자극하는 체험, 창의적인 아이디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휴먼 네트워크가 새로운 부가가치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지식산업과 생명산업의 확장 이후, 감성산업이 경제 활동의 다음 영역으로 자리잡아가는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 주목할 만한 주제다.
참고자료
-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
- B. Joseph Pine II, James H. Gilmore, “Welcome to the Experience Economy,” Harvard Business Review,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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