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이론은 고전학파 성장이론, 신고전학파 성장이론에 이어 등장한 세 번째 경제성장이론의 흐름이다. 이전 이론들이 기술진보를 경제모형의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다룬 데 반해, 신성장이론은 기술진보와 지식이 경제 내부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처음으로 제시한 이론이기도 하다.
고전학파에서 신고전학파로, 그리고 신성장이론으로
경제이론과 사상이 진보하는 것처럼 경제성장이론도 점점 구체화되고 실증적으로 발전해왔다. 고전학파 성장이론은 인구증가와 기술진보라는 두 힘의 상호작용으로 경제성장을 설명했지만, 생산요소의 변화를 동태적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태적 모형이었다. 신고전학파 성장이론, 특히 솔로우 모형은 자본축적과 기술진보가 결합하여 성장을 이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기술진보는 여전히 경제 외부에서 주어지는 변수로 취급되었다.
경제성장은 생산요소의 투입 증가와 기술진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남은 핵심 질문은 단 하나다. 기술진보란 도대체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서 오는가?
솔로우 모형의 빈 상자: ‘기술’이라는 미지수
솔로우 성장모형은 기술진보를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이라는 총체적인 개념으로 파악했다. 자본과 노동을 투입해도 설명되지 않는 성장의 나머지 부분, 즉 생산성 향상분 전체를 하나로 묶어 기술진보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기술진보는 솔로우 모형 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솔로우로부터 시작된 신고전파 경제성장이론의 결론은 경제가 종국적으로 성장이 멈추거나 모형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술진보율만큼 성장하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모형 내부에서 결정되지 않고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술진보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외생적 경제성장이론이라고 한다.
이것이 솔로우 모형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였다. 장기 성장의 원동력인 기술진보가 경제성장 모형 안에서 ‘A’라는 빈 상자로 남아 있고, 그것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어떻게 늘릴 수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외부에서 기술발전이 주어지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는 결론은, 정작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아무런 답도 주지 못한다.
내생변수와 외생변수: 핵심 개념의 차이
신성장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생변수와 외생변수의 구분이 중요하다. 내생변수(endogenous variables)는 경제모형 내에서 결정되는 변수이고, 외생변수(exogenous variables)는 모형 외부에서 주어지는 변수다.
솔로우 모형에서 기술진보는 외생변수였다. 경제주체들의 행동과 무관하게 주어진다고 가정된 것이다. 신성장이론은 이 가정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기술진보를 내생변수로 다루는 것, 즉 경제 내부에서 경제주체들의 의도적인 활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모형 안에서 설명하겠다는 것이 신성장이론의 핵심 출발점이다.
로머와 루카스: 기술진보를 모형 안으로 끌어들이다
1985년 1월 시카고대학교에서 루카스가 박사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면서 내생적 경제성장이론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역사적 순간이 만들어졌다. 1980년대 들어 폴 로머(Paul Romer)와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는 각자의 방식으로 기술진보를 경제성장 모형 안으로 끌어들였다.
폴 로머와 로버트 루카스가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지식(knowledge)’과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다. 이들은 개별 경제주체의 활동에 의해 지식과 인적자본이 내생적으로 축적되며, 그 결과 생산량이 체감하지 않고 선형적으로 증가하거나 체증한다고 강조했다.
신고전학파 성장이론에서 기술, 지식 등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었다. 신성장이론은 이와 달리 경제주체의 이윤 동기에 의해 경제 내부에서 의도적으로 기술과 지식이 증가하고, 이것이 생산 활동에 투입되면서 성장을 자극한다고 본다.
로머: 지식이 늘어날수록 생산은 체증한다
폴 로머는 1986년 논문 「체증현상과 장기성장(Increasing Returns and Long-run Growth)」을 통해 현대 경제성장이론의 방향을 돌려놓았다. 로머의 핵심 주장은 지식에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적 자본은 추가 투입할수록 한계생산물이 줄어들지만, 지식은 다르다. 한 기업의 R&D 투자로 창출된 지식은 다른 기업으로 전파되어 산업 전체의 생산성을 높인다. 이른바 지식의 외부성(knowledge spillover)이다.
로머의 내생적 성장이론은 기술진보가 규모에 대한 수익 체증을 가져올 수 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도 경쟁시장이 지탱될 수 있다는 균형 개념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기술혁신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규명이 가능하게 되었고,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와 특허제도 등이 매우 중요하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루카스: 인적자본이 장기성장을 이끈다
루카스는 기술진보의 원천으로 인적자본을 강조했다. 교육, 직업훈련, 현장학습 등을 통해 축적된 인적자본은 개인의 생산성을 높일 뿐 아니라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외부효과를 만들어낸다.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음으로써 개인은 거의 공짜로 고급 정보를 얻고 새로운 지식, 기술, 기능 등을 축적할 수 있다. 이 외부효과가 있는 한 인적자본 축적은 수확체감 없이 지속적으로 경제를 성장시키는 힘이 된다.
루카스는 인적자본 축적이 일어나는 경제에서 내생적 경제성장이론을 정립하였고, 이 이론에 의해 경제가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신성장이론의 핵심 주장: 지식에 투자하라
신성장이론이 경제정책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새로운 지식과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이 장기 경제성장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축적된 지식은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낸다. 아이디어는 사용한다고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공유되고 결합될수록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낳는다.
이런 논리에서 경제성장의 속도는 혁신 활동에 투입된 R&D 지출의 규모와 직결된다. 교육에 대한 공공투자, 연구기관 지원, 특허 등 지식재산권 보호 제도, 기업의 혁신 생태계 모두가 성장을 직접 촉진하는 정책 수단이 된다. 솔로우 모형에서는 이런 정책들이 장기 성장률에 영향을 줄 수 없었지만, 신성장이론에서는 달라진다.
신성장이론의 한계와 남은 질문들
어떤 경제성장이론도 현실의 복잡한 경제활동을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신성장이론도 예외가 아니다.
신고전학파 성장이론은 후진국이 선진국보다 빠르게 성장해 따라잡기(catch-up)가 일어나야 한다고 예측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반대로 신성장이론에 따르면 R&D와 인적자본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부유한 나라들이 가장 빠르게 성장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선진국이 될수록 오히려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또 하나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 기업이 혁신에 투자하려면 그에 따른 초과 이윤의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고전학파가 전제하는 완전경쟁 시장에서는 초과 이윤이 발생하지 않는다. 결국 신성장이론은 현실적으로 불완전경쟁 시장 구조를 전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신고전학파의 기본 가정과 충돌한다. 이 긴장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론의 진화가 말해주는 것
고전학파에서 신고전학파로, 그리고 신성장이론으로 이어지는 경제성장이론의 발전은 ‘기술진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점점 더 깊이 파고드는 과정이었다. 고전학파는 그것의 존재를 인식했고, 신고전학파는 그것의 중요성을 측정했으며, 신성장이론은 그것의 발생 메커니즘을 설명하려 했다.
로머와 루카스의 연구는 내생적 성장이론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이제 경제성장을 둘러싼 연구 주제는 더 넓어졌다. 기술이 무엇이며, 국가 간 기술이 어떻게 전파되며, 서로 다른 기술 수준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지식과 인적자본이 무엇인지, R&D와 기술발전의 관계 등 기술진보와 관련한 더 세밀한 주제들이 연구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AI 전환, 디지털 혁신, 농업 생산성 혁명 같은 주제들은 신성장이론이 제기한 질문들과 직결된다. 지식과 기술에 대한 투자가 어떻게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성장의 문을 여는가 — 이 질문은 경제학의 이론적 논쟁을 넘어, 오늘날 국가와 기업이 매일 직면하는 실천적 과제이기도 하다.
참고자료
- Paul Romer, “Increasing Returns and Long-run Growth,”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986
- Paul Romer, “Endogenous Technological Change,”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990
- Robert E. Lucas Jr., “On the Mechanics of Economic Development,”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1988
-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솔로, 경제성장의 학문적 기초를 닦다」(eiec.kdi.re.kr)
-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기술정책연구소(TePRI), 「정부 R&D 적정규모의 실체와 해법」(tepri.kist.re.kr)
- joohyeon.com, 「수렴논쟁 Ⅰ — 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나무위키, 「내생성장이론」
- 펜앤드마이크, 「폴 로머의 내생적 경제성장이론이 주는 시사점」(pennmike.com)
경제성장이론의 전체 흐름과 함께 농업·식량·AI 전환 분야의 전문 분석이 궁금하다면 KAFI 경제개발과 성장이론 카테고리에서 관련 콘텐츠를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