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라는 말을 매일 쓰면서도 그 뜻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다. 주가가 올랐다, 물가가 뛰었다, 성장률이 낮아졌다는 식의 숫자로 경제를 이해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라는 단어 자체가 품고 있는 의미를 들여다보면, 숫자보다 훨씬 크고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은 왜 모여 사는가
인간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과정을 경제 활동이라고 한다. 먹고, 입고, 잠자리를 구하는 것은 인류가 등장한 이후 가장 근본적인 과제였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 문제를 더 잘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가족이나 부족, 나아가 국가 단위로 모여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경제는 바로 이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충족하고,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나누고 교환하는 활동 전체가 경제다. 오늘날에는 경제의 범위가 더 넓어져 사회, 문화, 교육까지 경제와 연결해서 이해하는 시대가 됐다. 사람이 살아가는 거의 모든 활동이 경제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세제민(經世濟民):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구제하다
우리가 쓰는 ‘경제(經濟)’라는 말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이다. 경세란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며, 제민은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풀어서 말하면, 국가와 사회를 올바르게 경영하여 백성들이 고난에서 벗어나 윤택하게 살 수 있도록 한다는 동양의 사회 철학이다.
경세제민은 장자에서 유래된 성어로, 유교에서는 국가와 사회가 추구해야 할 구체적 실천의 궁극적 과제와 원리로 삼았다. 경세(經世)는 세상을 경영하는 기준과 원칙이고, 제민(濟民)은 그 목적이다. 다스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스림을 통해 백성의 삶을 구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근대 이전 동아시아에서 ‘경제(經濟)’라는 단어는 정치적, 윤리적 의미를 포함하는 경세제민의 약자로 사용되었다. 이후 일본의 서구화 과정에서 ‘economy’의 번역어로 경제라는 단어가 채택되었고, 이 단어가 한국으로 이어지면서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 전반에서 번역어로 자리 잡았다.
경세제민이라는 개념에서 주목할 점은 공동체의 단위가 국가라는 것이다. 개인이나 가정을 넘어 사회 전체, 나아가 천하를 바르게 이끄는 것이 경제의 목적이었다. 그래서 경세제민은 통치와 철학이 결합된 개념이기도 하다.
이코노미(economy): 집안 살림에서 출발하다
서양에서 경제를 뜻하는 ‘economy’는 전혀 다른 경로로 같은 뜻에 도달했다. 경제학(economics)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 닿는데, 이 단어는 오이코스(oikos)와 네메인(nemein)의 두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오이코스는 ‘가정(household)’으로, 네메인은 ‘관리와 분배(management and dispensation)’로 번역된다.
오이코노미아는 ‘가정 관리(household management)’로 번역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오이코스는 부유한 토지 소유자의 사유지와 가산(家産) 전체를 의미하는 생산과 소비의 기본 단위였다. 오늘날 생태학(ecology)이나 생태계(ecosystem)의 접두어 ‘eco’도 바로 이 오이코스에서 나왔다. 집과 가정이라는 의미가 자연환경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economy’의 어원을 고대 그리스어 οἰκονομικός, 즉 가정이나 가족을 관리하는 실천에 능숙한, 검소하고 절약적인, 경제적인이라는 뜻의 단어에서 찾는다.
오이코스의 세계에서 경제는 가정과 가족이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원을 잘 관리하고 분배하는 기술이었다. 거대한 국가 통치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공동체인 가정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두 개의 출발점, 하나의 목적지
경세제민과 이코노미는 출발점이 다르다. 경세제민은 국가와 사회라는 큰 공동체를 먼저 생각했고, 이코노미는 가정과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두 개념이 도달하려는 곳은 같다. 구성원들이 고난에서 벗어나 더 잘 살 수 있도록 공동체를 잘 관리하고 경영하는 것이다.
가정이 모여 부족이 되고, 부족이 모여 국가가 된다. 국가들이 연결되어 오늘날의 글로벌 경제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공동체의 범위는 시대마다 달라졌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다는 경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경세제민과 오이코노미아가 말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경제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결론
경제라는 단어는 동서양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독립적으로 만들어냈지만, 그 핵심에는 같은 질문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함께 더 잘 살 수 있을까. 경세제민은 국가의 올바른 경영을 통해, 이코노미는 가정 살림의 현명한 관리를 통해 그 답을 찾으려 했다. 오늘날 경제 정책을 논할 때, 숫자 뒤에 있는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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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나무위키, 경세제민 항목 — https://namu.wiki/w/경세제민
- 위키백과, 경제 항목 — https://ko.wikipedia.org/wiki/경제
- Christos Domazakis, Retrospectives: What Did the Ancient Greeks Mean by Oikonomia?,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Vol. 30 No. 1, 2016 — American Economic Association (https://www.aeaweb.org/articles?id=10.1257/jep.30.1.225)
- Wikipedia, Oikonomos — https://en.wikipedia.org/wiki/Oikonomos
- Wikipedia, Oeconomicus — https://en.wikipedia.org/wiki/Oeconomi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