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경제 연구

The Evolution of Market Economies

자본주의 경제는 자본, 기술 혁신, 시장 경쟁을 바탕으로 산업과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 온 경제 시스템입니다. 산업혁명부터 디지털 경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자본과 기술, 무역과 금융이 경제 성장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경제 구조의 변화와 미래 성장 동력, 그리고 시장경제의 발전 방향에 대해 연구합니다.

고전주의
Classical

경제 활동을 하는 이유

경제 체제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 시스템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재화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경제 체제이다.

중농주의와 중상주의 사상은 근대 자본주의 시장 구조의 밑바탕이 되었다. Adam Smith는 『국부론』(1776)에는 국부의 성질과 원천, 상품의 가치와 가격, 임금․이윤․지대, 자본의 축적과 투자, 상품의 수출과 수입, 국가의 경제 정책 등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 이론적이고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것이 고전경제학 또는 고전학파 경제학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자유주의와 자유 무역을 표방하는 중농주의 사상을 접목하고, 독점과 보호 무역을 시행하는 중상주의 사상을 비판했다.

고전학파 경제학은 중세 이후의 사회 변화와 산업혁명, 경제 성장과 경제 발전 등에 대해 연구했다. 자유 무역 이론을 만든 Ricardo David, 인구 증가와 경제 발전에 대해 연구한 Thomas Robert Malthus, 고전학파 경제학을 집대성한 Mill. John. Stuart 등 약 100년간 이어졌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1759)에서 인간이 왜 부를 축적하고, 경제적인 활동을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인간이 평화롭고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 질서를 이끌어내는 도덕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이 적극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인간의 본성과 감정에 근거해 설명하고 있다. 사회 질서를 이끌어 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이러한 본성은 인간의 감정에 근거한다. 인간은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더 잘살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노력한다.

인간에게 마음이 평온한 행복이란 건강하고, 빚이 없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인간의 행복은 경제적 부나 사회적 지위에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은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공평한 관찰자가 있어서 인간이 하고자 하는 경제적 행위와 감정의 타당성을 판단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속에 있는 공평한 관찰자의 판단에 따르지만, 연약한 사람은 공평한 관찰자의 판단에 따르지 않고 타인을 의식해서 판단한다.

사람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부가 필요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이상의 부를 얻더라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더 이상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연약한 사람은 부가 늘어날수록 자신이 더 행복해진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더 소유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경제는 이렇게 연약한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행복해지려는 야심으로 인해 발전하고, 물질적으로 더 풍부해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가격 조정 메커니즘 「보이지 않는 손」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대표하는 말인 보이지 않는 손은 『도덕감정론』 제4부와 『국부론』 제4편에서 한 번씩 등장한다. 개인은 경제 활동을 할 때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자신이 경제 활동을 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이익이 얼마나 촉진되는지도 모른다. 개인이 경제 활동을 하는 이유는 단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최대의 가치를 얻기 위해 노동하는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인간이 이기심과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절약한 것이 궁극적으로는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부와 지위를 추구하려는 개인의 야심은 사회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성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이 방임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개인의 야심은 타인의 생명과 신체, 재산과 명예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정의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이루어지는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 가격의 결정, 투자와 분배 등은 가격 조정 메커니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시장에서 이루어진다. 개인이 자신의 부와 지위를 추구하기 위해 행동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 전체의 번영을 가져온다. 다만 경제적 자유가 마치 인간의 탐욕에 대해 무한정 허용하는 방임으로 왜곡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으나,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허영심, 야심은 인간이 갖고 있는 자연적인 본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러한 본성은 정의의 법에 의해 규제된 것이다.

시장 가격과 자연 가격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운영하는 가장 근본적인 시스템은 가격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을 시장 가격이라고 한다. 반면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과 판매를 통해 노동자와 자본가, 지주가 보상받아야 하는 단위당 임금과 이윤, 지대의 보수를 자연 가격이라고 한다. 자연 가격은 현대 경제학이나 경영학에서 다루는 생산 원가와 비슷한 개념이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 가격은 장기적으로 노동자와 자본가, 지주가 보상받게 되는 자연 가격에 일치하게 된다. 시장 가격이 자연 가격에 일치하게 되는 것은 시장에서 생산 요소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가격이 자연 가격보다 높으면 다른 부문의 생산 자원이 들어와서 공급을 증가시키고 그것으로 인해 가격은 다시 하락하게 된다. 반대로 시장 가격이 자연 가격보다 낮으면 생산 자원이 다른 부문으로 나가서 공급이 감소하게 되고 가격은 다시 상승하게 된다. 시장에 생산 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을 방해하는 인위적인 장벽이 있거나 독점이나 특권이 주어지면 자연 가격을 웃도는 시장 가격이 형성된다. 애덤 스미스가 보호 관세, 보조금, 독점권을 제공하는 중상주의 정책이 일부 상인과 제조업자들의 이익만 증대시킬 뿐 전체적인 국부는 감소한다고 비판한 이유이다.     

국부를 가져오는 원천

국부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근세 중상주의와 중농주의이다. 중농주의는 농업 생산을 통해 국부가 창출된다고 주장하고, 중상주의는 상업과 무역을 통해 금과 은을 축적하는 것이 국부라고 주장했다. 애덤 스미스도 국부의 기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국민들이 연간 소비하는 필수품과 편의품의 총량이 국부라고 한다. 당시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았고,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므로 필수품과 편의품의 소비가 국민 생활의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토지와 자본 설비를 사용한 모든 노동의 생산물을 국가의 수입으로 파악하였다. 국부를 가져오는 원천은 국민들이 1년 동안 투입한 노동량이다.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노동 시간에 의해 상품의 가치가 결정된다. 노동에는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이 있으며, 공업과 농업의 생산적 노동만이 부를 생산한다고 보았다.

국가의 부는 효율적인 사회 시스템과 사회 구성원들의 자질에서 나온다. 이것이 노동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노동의 부가가치가 상품의 가치를 높여 국부를 증대시키는 것이다. 또한 분업과 자본 축적은 물질적 풍요를 증진시키는 자연적 원리이다. 분업을 통해 노동 생산성이 향상되고, 자본 축적으로 더 많은 노동을 고용하면서 부가 증대되는 것이다. 분업이 가능하려면 보다 많은 재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분업보다 자본 축적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본가의 자본 축적과 사업 확장으로 경제가 성장한다. 또한 노동 수요의 증가에 따라 실업률이 낮아지고 임금이 상승하면서 노동자의 처우도 개선된다.  

수정자본주의
Keynesian

공급 과잉과 대공황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공장제 대량 생산 체제가 도입되기 이전까지 인간은 물질적인 풍요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판했을 당시에도 수공업자에 의한 가내공업이나, 공장제 수공업이 대부분이었다. 애덤 스미스도 국부의 기준을 국민들이 1년간 사용하는 생활필수품과 생활편의품의 총량이라는 현실적인 기준으로 판단했다.

산업혁명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늘어난 생산성과 공급 능력을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급 과잉 시대가 도래 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도 예상하거나 대비할 수 없었다.

생산에만 집중하던 자본주의 산업 사회는 19세기 후반부터 생산물의 공급 과잉과 소비 부족 등으로 인해 공항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공황은 1929년 10월 24일 미국의 뉴욕 주식거래소 주가가 대폭락하면서 대공황으로 확대되었다. 기업들은 도산하기 시작하고, 물가가 폭락하면서 생산과 경제 시스템이 마비되었다. 기업이 도산하면서 기업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대량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전 세계로 파급되었고,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가져왔다. 대공황의 영향은 공업뿐만 아니라 농업에도 미쳤다.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과 남아메리카에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고, 농산물을 대량으로 파기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대공황 극복과 뉴딜 정책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내재적인 요인에 의해 주기적으로 공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리고 경제 정책으로 공황을 해소하거나 완화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자본주의가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것처럼 실제로 대공황이 발생했고, 마치 자본주의가 당장이라도 붕괴되는 것처럼 경제 시스템이 붕괴되었다.

그러나 대공항으로 인해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가 붕괴하지는 않았다. 대공항은 내재적인 요인에 의한 자본주의 붕괴 현상이 아니라 인류가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공급 과잉에 대한 해법을 찾아가는 조정 과정이었다. 현대 경제에서도 시장 경제와 금융 시장이 곧 붕괴될 것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의 취약점과 불안정에 대한 비관적인 경고는 계속되고 있다. 미래 경제에 대한 전망은 극단적인 비관이나 낙관이 아니라면 대부분 시장이 조정 과정을 거치는 동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공황으로 인해 생산량이 줄어들고, 실업이 큰 폭으로 증가하자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유 재산과 경제적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다는 의식이 확산되었다.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 한 것처럼 경제와 시장을 자연의 원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주도적으로 관여하고 경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소위 ‘수정자본주의’가 도입되었다. 애덤 스미스의 고전학파 경제사상과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이 혼합된 형태이다.

대공황이 최고조에 이른 1933년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에 취임한 Franklin Delano Roosevelt는 경제 사회의 재건, 국민의 구제 등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정책들을 입법화하였다. 경제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1933~1934년에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의 분리, 소액 예금주 보호, 주식 시장 규제, 농업 신용 대출 제도 확장, 농산물 최저 가격 보장제 도입, 사회 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제1차 뉴딜 정책을 실시하였다. 1935~1938년에는 노령 연금, 실업 보험, 노조 강화 등의 제2차 뉴딜 정책을 실시하였다.

 총수요 관리 정책

영국의 경제학자 John Maynard Keynes는 1936년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발표하면서 ‘거시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제학 분야를 개척했다. 케인즈는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반대하고, 유효 수요의 역할과 정부에 의한 총수요 관리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산업혁명 이후 공급에만 치우쳐 있던 자본주의는 유효 수요 부족으로 인해 주어진 자원이 완전히 활용되지 못하는 불완전 고용과 비자발적 실업의 위험성을 갖고 있었다. 대공황으로 인해 발생한 대량 실업도 자본주의 내부의 유효 수요가 부족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재정 지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으로 유효 수요를 창출하고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전체의 유효 수요가 고용량의 규모를 결정하기 때문에 총수요가 부족하면 실업이 증가하게 된다. 기업가는 유효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양만큼만 노동자를 고용하기 때문에 고용량은 총수요의 크기에 따라 정해진다. 따라서 소비하지 않고 저축만 하면 유효 수요가 감소하게 되어 결국 고용과 국민 소득이 감소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의 소비가 오히려 경기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소비의 확대는 선진국 경제를 중심으로 현대 경제의 최대 이슈가 되었다. 다만 아직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본 축적이 이루어지지 못한 저개발국가에서는 저축보다 소비가 필요하다는 ‘절약의 역설’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경제 개발과 성장을 위해서는 아직 저축을 통한 자본 축적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통적인 자유주의를 포기하고, 정부 권력에 의한 통제와 재정 지출을 통해 경기 회복을 추구한 New Deal 정책은 케인즈의 유효 수요 이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다만 케인즈가 뉴딜 정책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케인즈가 뉴딜 정책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반대로 뉴딜 정책이나 루즈벨트가 케인즈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한다.

정부의 시장 개입과 재정 정책

대공황과 케인즈식 수정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새로운 이슈를 등장시켰다. 하나는 ‘시장의 실패’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 실패로 인한 ‘정부의 시장 개입’이다. 대공황 이후 케인즈 이론은 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 지출을 통해 정부의 시장 개입을 확대하고, 경제가 호황일 때는 재정 지출을 축소시키는 경제 정책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공공 지출이 민간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구축효과에 대해서도 투자의 승수 효과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국가가 수행하는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를 제외하고, 경제 성장을 촉진시키거나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대략 세 가지이다. 첫째 아직 경제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한 후진국이나 미개발국가가 산업화와 경제 개발을 촉진시키기 위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발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이다.

다음은 시장에는 실질적인 유효 수요가 존재하고 있으나, 시장 구조의 불합리나 불균형으로 인해 소비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 수요와 소비를 확장시키기 위한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경제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일자리와 소득의 창출이 어려운 경우 경제 활동 범위를 확장시키기 위한 정책이 필요한 경우이다.

산업화된 선진국 경제에서는 이미 위의 두 가지 시장 개입 정책이 필요한 단계가 지났다. 경제 규모가 이미 충분히 커졌고, 노동과 자본, 기술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세계화 경제에서 대규모 재원을 투입하더라도 재정 정책이나 통화 정책으로 경제를 부양시키려는 정책 목적을 기대하기 점점 어려울 것이다.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경우 그에 상응하는 정책 효과를 얻지 못하거나, 정책 실패로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그 피해는 국가 재정의 부실화와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계획 경제와 스태그플레이션

1929년 대공황 이후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들은 케인즈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수정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세계적인 불황과 장기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이번에는 케인즈 경제 정책이 실패한 결과라는 지적이 대두되었다. 일반적으로 불황기에 물가가 하락하고 호황기에 물가가 상승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제 불황 속에서도 물가가 상승하는 상태이다. 경기 침체를 의미하는 스태그네이션과 인플레이션을 합성한 말이다.

국가 권력의 시장 개입이 오히려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형평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 시장의 효율성을 바탕으로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사상’이 등장했다.

1980년대 이후 주류로 자리 잡는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정책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신고전학파는 영국의 경제학자 Marshall, Alfred이 한계 이론과 고전학파를 확대․발전시켜 확립되었다. 기본적으로 시장 경제를 옹호하고 개인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행동하므로 정부가 시장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고전학파는 경제학의 대상을 생산에서 소비와 교환으로 전환했다. 고전학파가 재화의 가치가 공급 조건, 즉 생산 비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 반면 신고전학파는 소비자의 주관에 따라 상품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같은 사람이라도 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한계효용 이론을 주장하였다.

로널드 레이건과 마가렛 대처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실패가 시장의 실패보다 경제에 더 비효율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부 규제를 완화하고, 최대한 시장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정부 규제로 인한 시장 왜곡을 없애고, 각종 규제의 철폐, 국영기업의 민영화, 자유 무역, 외국인 직접 투자 등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되었다. 영국의 마가렛 대처 총리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자본주의 선두국인 영국은 1970년대 무역 적자와 파운드화 가치의 불안정 등 저성장 고실업의 경제 상황에서 IMF 구제 금융까지 받게 되었다. 1979년 영국 최초 여성 총리로 선출된 Margaret Thatcher는 영국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소득세율 인하, 정부 지출 삭감, 노동조합 권한 축소, 국영기업 민영화 등의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그녀는 Friedrich Hayek의 저서 『자유의 본질』이 자신의 신앙과 같았고, 통화주의자 Milton Friedman에 대해 자유의 경제학을 일깨워 주었다고 칭찬하였다.

1981년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Ronald Reagan은 케인즈식 정부 지출로 성장을 견인하는 방식보다 산업 규제를 줄이고, 법인세를 낮춰 생산자로 하여금 상품을 더 많이 더 값싸게 생산하도록 고무하는 방식이 경제 활성화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세율을 낮추면 소비가 늘어나고 그로 인해 일자리가 늘어나 더 많은 사람들의 수입이 증가할 것이라는 이른바 ‘낙수 효과 이론’이다. 마가렛 대처에 대해서도 영국은 물론 서방 세계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다준 위대한 지도자라고 극찬하였다.

 금융 위기와 낙수 효과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효율성과 자유주의를 지향함으로써 비능률을 해소하고,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빈부 격차의 확대, 시장 개방 압력으로 인한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갈등 등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는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부작용으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현대 경제의 불황과 저성장, 소득과 부의 불균형, 금융 위기 등 다양하게 나타나는 사회경제적 문제가 모두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신자유주의 사상의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인 낙수 효과의 영향력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Cause and Consequences of Income Inequality: A Global Perspective 2015”에서 1980년부터 2012년까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159개국 자료를 바탕으로 소득 분배와 국부의 연관성을 조사한 결과 부유층의 소득이 높아지면 이들이 투자와 소비를 늘려 저소득층도 잘살게 되고, 성장률도 높아진다는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낙수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반대로 소득 상위 20퍼센트의 부가 1퍼센트 증가하면 5년 뒤 GDP는 0.08퍼센트 포인트 줄어들었고, 하위 20퍼센트의 소득이 1퍼센트 증가하면 GDP는 같은 기간 0.38퍼센트 포인트 늘어났다는 것이다. 소득 증가와 성장률 간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소득 불평등 확대 → 저소득층 교육 기회 감소 → 노동생산성 저하 → 경제 성장률 감소의 가설을 제시하였다. 부자들은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에 비해 소득 중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에 소득이 부자들에게 집중되면 총수요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결국 부자들의 영향력은 높아지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가 경제 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01.

원시 공동체

원시 공동체사회는 가족이나 부족단위로 모여 생활하면서 공동으로 농작물을 경작하거나, 수렵 및 목축업 등을 통해 자급자족하며 생활했다. 식량 확보와 각종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협력하며 생활했다. 

경제활동의 목적은 인간 생활에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유재산이나 계급이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자와 가난한 자, 압제자와 압제받는 자 사이에 빚어지는 불평등이 형성되지 않았고, 착취나 억압과 같은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남은 잉여생산물이 발생하기 시작하고, 잉여생산물이 점차 사적인 소유물이 되기 시작하였다. 경제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잉여생산물에 대한 사적 소유는 물론 그러한 생산물들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얻을 수 있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등장하였다.

사유재산 차이는 점차 신분적인 차이로 변해가면서 원시 공동체사회도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다른 부족과의 전쟁 등으로 노예가 등장하면서 공동체사회의 해체는 가속화되었다.

02.

고대 노예제

고대 사회는 전쟁으로 영토와 사람, 물건을 약탈하고 국가의 영향력을 확장시켰다. 고대 노예제사회는 경제체제라기 보다 영토와 사람들을 통치하기 위한 지배체제라고 할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한 영토 확장과 노예 노동을 이용해 생산하는 약탈적인 경제체제이다. 패전국은 영토와 물건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사람들은 노예가 되는 사회(BC 3C-4C)가 되었다. 사람들의 신분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으로 구분되었고, 전쟁포로나 피정복 지역의 주민들은 노예가 되었다. 노예는 물건과 도구처럼 주인에게 예속되었고, 모든 권한은 노예 소유자가 갖고 있었다. 노예 노동은 농업뿐만 아니라 목축, 수공업까지 확대 되었다. 로마 라티푼디움(latifundium)은 노예 노동을 이용해 토지를 대규모로 경작했고, 그리스 에르가스테리온(ergasterion)에서는 공산품을 대규모로 생산했다.

로마제국은 395년 동․서로 분열되었고 이탈리아,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 족의 침입으로 476년에 멸망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고대 노예제 사회도 함께 해체되었다.

03.

중세 봉건제

중세 봉건제 사회(4C~14C)는 토지와 군사, 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분권적인 권력과 다양한 계약의 형식으로 등장하였다. 왕과 제후, 제후와 기사는 각각 주군과 가신의 주종 계약 관계가 형성되었다. 주군으로부터 토지를 부여 받은 가신들은 토지를 받는 대신 주군에 대한 충성을 약속하였다. 이러한 것을 주종관계라고 하는데 이것이 농노제와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 봉건제도이다.

농노는 지주(landlord)인 영주에게 토지를 빌려 농사를 짓고, 영주는 토지를 빌려준 대가로 수확물의 일정량을 소작인(tenant)인 농노에게 지불 받았다. 농노와 영주의 관계가 임차한 토지에 대해 지대를 지불하는 경제적 관계라고 하지만 생산물의 대부분은 영주에게 귀속되었고, 신분적으로도 상당부분 예속되어 있었다.

중세 봉건제 사회가 해체되면서 토지에 대한 절대적인 소유가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영주의 직영지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자유로운 농민층이 생성되기 시작하였다. 자가 토지에 대한 소유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생계에 대한 요건이 되었다. 또한 인간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과 생산요소가 제약되지 않는 경제적 여건이 갖춰지기 시작하였다.

04.

중상주의

중상주의(mercantilism)는 16~18세기 유럽의 절대주의 왕정국가를 뒷받침하는 정치경제 사상이다. 근세 절대왕정 국가의 관심은 국가의 ‘부’를 축적하는 것이고, 금과 은을 축적하는 것이 국부를 축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상주의는 상업과 국제무역의 유통과정에서 부가가치(value added)가 생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부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금과 은을 축적하는 것이 국부를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외시장의 개척과 무역흑자를 늘리기 위해 국가가 개입해서 수입을 규제하고, 수출을 장려하는 보호무역을 주장하였다.

중상주의 정책에 반대하며 등장한 고전학파와 이후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도 상업을 중시하지만, 이들은 보호무역을 반대하고 자유무역을 주장하였다. 중상주의가 금과 은을 ‘국부’라고 생각한 반면, 고전학파 경제학을 창시한 아담 스미스는 ‘국민들이 1년 동안 실제로 소비하는 필수품과 편의품의 총량’이 국부라고 판단했다. 무역과 제조업을 촉진시키기 위한 중상주의 정책은 일부의 특정 상인과 제조업자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간다고 비판하였다.

05.

중농주의

중농주의(physiocracy)는 농업생산을 통해 국부가 창출된다는 경제사상이다. 프랑스 루이 14세(1638~1715)의 중상주의 정책으로 프랑스 농산물의 수출이 억제되는 것에 반대하여 케네와 튀르고 등이 농업 진흥과 자유무역을 주장하면서 등장한 경제사상이다. 중농주의는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중상주의 정책에 반대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주장하였다.

중농주의 사상은 상업과 무역이 아니라 농업이나 농업노동에서 잉여 또는 부가가치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농업이 유일한 생산적 산업이고, 농업생산을 통해 부가 창출되기 때문에 토지를 경작하는 노동만이 한 나라의 부와 소득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한다. 수공업 등 여타 산업들은 주어진 가치의 물체를 동일한 가치의 다른 물체로 변형시키는 것에 불과한 반면 농업은 물체가 변형될 뿐만 아니라 가치와 물량이 증가해 순생산물이 생긴다는 것이다. 국제교역의 확대를 통해 시장을 확장하려는 것은 중상주의와 동일하다.

아담 스미스는 1764년부터 1766년까지 3년간 유럽을 여행하면서 파리에서 케네, 튀르고 등 중농학파와 교류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념적으로 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을 표방하는 중농주의는 이후 1776년 미국의 독립전쟁과 1789년 절대왕정에 맞선 프랑스 시민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또한 고전학파 경제학으로 이어지는 교량 역할을 하였다.

06.

사회주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내재적인 요인에 의해 주기적으로 공황이 발생할 것이고, 경제 정책으로 공황을 해소하거나 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는 붕괴한다는 것이다.

엥겔스도 생산은 사회 전체의 분업과 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생산의 결과인 이윤은 자본가 혼자만 획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생산 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와 무산 계급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생산물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생산 방식은 역사적으로 자체 모순에 의해 붕괴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모순 때문에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사이에 적대가 생긴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Socialism를 제시했다. 사회주의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와 그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 등에 반대하고, 생산 수단의 공동 소유와 계획적인 생산, 평등한 분배를 주장하였다. 

마르크스 사상은 20세기 러시아 혁명과 중국 혁명 등을 통해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했던 중국은 1978년 이후 개방 정책을 추진했고, 베트남도 1986년 문호 개방 정책을 채택하였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고, 1991년에는 구 소련연방이 해체되면서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도 사회주의를 포기했다.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사라지고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단일 체제가 되었다.  

Market Evolution

시장경제는 산업 구조, 자본 흐름, 기술 혁신, 정책 변화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전해왔습니다.

→ 금융과 자본시장
→ 산업 투자 확대
→ 글로벌 시장 연결

→ 산업혁명과 기술혁신
→ 정부 정책 변화
→ 무역과 규제 환경

→ 신산업 성장
→ 시장 변화 분석
→ 미래 투자 기회